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로 촉발된 여권과 대법원의 갈등이 조희대 대법원장 부친상을 계기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예정됐던 긴급 현안질의를 취소했고 여권 인사들도 공세를 자제하고 나섰다. 다만 대법원은 대법관 제청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양측 충돌이 재점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법원은 지난 31일 조 대법원장의 부친 조부환씨가 향년 93세로 전날 별세했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대법원에 출근하지 않고 경북 포항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지켰다. 대법원 측은 “조 대법원장이 가족들과 조용히 장례를 치르길 원한다”며 외부 조문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뜻을 전했다.
대법관 재제청 논란과 관련한 질문에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는 게 큰 슬픔을 겪고 계신 분들께 맞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말을 아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조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제청한 것과 관련해 사전 협의 없는 ‘서면 제청’이었다며 재제청을 요구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김민석 대표는 이날 빈소를 찾아 조 대법원장과 유가족을 위로했으며, 재제청 관련 대화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김 대표는 소속 의원들에게 장례 기간(9월 1일 발인) 동안 조 대법원장을 직접 거명하는 것을 자제하고 공적 언행에도 최대한 예우를 갖춰달라고 당부했다. 서영교 법사위원장과 김기표·김남희 의원 등도 함께 조문했으며, 서 위원장은 “위로의 말씀을 드렸고 재제청이나 국회 출석 관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정점식 원내대표와 곽규택·박형수·이인선·조배숙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정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법원장께서 굳게 심지를 먹고 이겨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강조하며 애도와 함께 사법부 독립을 거듭 촉구했다. 정 원내대표는 조문 후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대화를 안 했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의 부친상으로 국회 법사위는 이날 오후 예정됐던 대법관 제청 관련 현안질의를 취소했다. 앞서 법사위는 조 대법원장에게 증인 출석을 요구했으나,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헌법상 독립적 권한인 제청권 행사에 관해 국회에서 증언하도록 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에 반한다’는 의견서를 내고 불출석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조 대법원장의 부친 발인은 1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경북 경주시 강동면 선영이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가 요구한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과 후보추천위원회 재구성 문제를 검토한 뒤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지만, 부친상으로 일정이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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